뉴스는 왁자지껄하게 쇄도하면서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에 침투해왔다.
오늘날 고요한 순간을 누린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성취인가. 깊이 곯아떨어지거나 친구와 산만하지 않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흔치 않은 기적이 아닌가. 우리는 뉴스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단 하루라도 빗소리와 자기만의 상념에 귀기울이기 위해서는 실로 구도자적인 훈련이 필요하지 않는가.
뉴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 즉 질투와 공포, 흥분과 좌절 같은, 계속 들어왔지만 때로 애초부터 모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곤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루는 데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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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신뢰할 만한 사실 보도를 찾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가 쇄도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뭐란 말인가?
이 사실들은 정치적 삶의 핵심적 질문들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 뉴스들은 우리가 뭘 이해하도록 돕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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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스스로를 현실을 그려내는 권위있는 초상화가라고 제시할지도 모른다.
뉴스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대단히 난감한 질문에 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는 빼어난 능력은 없다. 뉴스는 어떤 이야기를 조명하고 어떤 이야기를 빼버릴지 선택하면서 단지 현실을 선택적으로 빚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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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언론은 어두움에 그렇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출까? 어째서 잔인함에 그렇게 초점을 맞추면서 희망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 걸까? 그들은 뉴스 수용자들이 원체 순진하고 근심이라고는 없는데다 스스로를 흡족해하는 사람들이어서,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좀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타인에 대한 기대를 재조정하고, 할 수 있다면 안전 대책을 마련하도록 말이다.
이런 생각은 뉴스의 어두운 현실주의가 없을 경우 국가가 자신의 문제를 얼버무리고 어리석게도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위험한 경향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가정에 기반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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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사실이 언론의 억측과 절망스러운 보도의 절반정도는 단박에 날려버릴 것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언론이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정치의 핵심 영역에서 한 사람이나 한 정당이 단숨에 성취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뉴스의 순환 속도가 요구하는 것만큼 빨리 상황을 변화시켜내는 건 누구라도(그 사람들은 그저 바보 내지 멍청이 집단이 아니다) 불가능하다.
어떤 문제의 경우 소위 유일한 '해결책'은 메시아적 리더, 국제회의 혹은 신속한 전쟁에 기대는 게 아니라, 100년 혹은 그 이상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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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는 다른 식으로 깊이 상상하려는 우리의 의지뿐 아니라 그 능력까지 축소하는 방식으로 사안들을 특정한 틀에 가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 방식이 지닌 겁박하는 힘을 통해 뉴스는 우리를 마비시킨다. 이런 문제를 파고드는 이가 없다면, 불확실하지만 잠재적으로는 중요한 개인들의 사색은 위축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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